라합 이야기의 오해와 진실

조회 수 43927 추천 수 0 2015.02.11 17:19:57

라합 이야기(2)의 오해와 진실(or 라합의 붉은 줄인가 신앙고백인가?)

 

구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방여인 가운데 한 사람은 수 2장에서 발견되는 라합이다. 이 여인은 고귀한 신분이 아니라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천박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구약 성경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음은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구약을 설교하는 목회자들도 이 여인에 대한 중요성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종종 라합 이야기의 핵심 논점에서 벗어나 주관적 해석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러 목회자들은 수 2장을 설교할 때, 라합의 창문에 달아 내린 붉은 줄의 의미에만 집착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라합의 가족들이 심판에서 구원 받았던 유일한 근거는 붉은 줄이었으며, 이 붉은 줄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십자가의 보혈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설교는 소위 알레고리적 해석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그러나 종종 목회자들은 소위 알레고리 해석을 마치 모형론으로 오해하여 매우 주관적인 자신의 해석을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여기서 필자는 모형론에 대한 오해를 잠간 설명한 후, 알레고리 해석에서 벗어난 라합 이야기의 핵심 논점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모형론에 대한 오해

 

라합의 붉은 줄을 십자가의 붉은 피로 해석하는 목회자들의 설교는 모형론적 입장이 아니라 주관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에 기인한다. 이런 설교를 모형론적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대체로 모형론의 이해에 대한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알레고리적 해석은 중세 시대에 널리 행해진 성경 읽기 방식으로서 본문 안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찾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본문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주관적 해석을 낳는 부작용을 초래한 바 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가들은 알레고리적 해석의 문제를 지적하고 역사 문법적 해석을 제시하며, 모형론에 근거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강조하였다. 비록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분류방식들을 제시하지만 지금도 모형론(Typology)이 구약과 신약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주요 열쇠가 된다는 점을 긍정한다. 그러나 오늘날 소위 종교개혁가들의 전통을 따라 구속사적 해석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조차도 알레고리적 해석을 시도하면서 마치 자신의 해석이 모형론에 입각해 있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알레고리적 해석과는 달리, 모형론은 어떻게 이해되고 정의될 수 있는가? 학자들이 설명하는 모형론에 대한 개념 정의들은 다소 차이점이 있지만, 아래와 같은 베이커(David L. Baker)의 입장은 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나의 모형(a type)은 하나의 성경적 사건, 인물 혹은 제도로서 다른 사건들, 인물들 혹은 제도들의 한 모범(an example) 혹은 한 패턴(pattern)으로서 가능한다.

모형론(typology)는 모형들과, 모형론들 간의 역사적 신학적 일치성(correspondence)에 대 한 연구이다.

모형론의 근거(basis)는 선택 받은 백성들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관된 사역(God's consistent activity)에 있다.

 

더욱이 구약의 역사적 특성, 사건의 반복 그리고 신학적 연관성에 초점을 두는 모형론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자의적 적용으로 치닫는 알레고리적 해석과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152:18에 등장하는 라합의 붉은 줄은 앞서 언급한 모형론의 특징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라합의 붉은 줄을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시키는 해석은 모형론이 아닌 알레고리적 시도에 가까운 것이다.

 

라합 이야기(2)의 논점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라합 이야기(2)을 읽고 해석할 때, 라합의 붉은 줄보다도 더 중요한 본문의 논점은 무엇인가? 라합 이야기(2)은 여호수아서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이방여인이요 천박한 신분이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라합 이야기(2)의 핵심을 살펴보기에 앞서 여호수아서 전체 구조 안에서 라합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존 스텍(John Stek)은 여호수아서의 전체 구조를 네 개의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명하게 제시한다.

 

주제적 구분

본문

대왕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와 함께 가나안으로 진입하시다

1:1-5:13

대왕 여호와께서 가나안을 정복하시다

5:13-12:24

대왕 여호와께서 정복한 땅을 조직화하시다

13:1-21:45

대왕 여호와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충성을 촉구하시다

22:1-24:27

 

이처럼 여호수아서는 대왕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를 통해 그의 군대를 이끌고 가나안에 진군하여 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의 행정적 조직을 이루시고 그 땅에서 거하며 살게 될 미래의 이스라엘을 향해 언약적 충성을 촉구하는 일련의 주제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호수아서의 도입부에 속하는 라합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의 큰 틀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서 안에서 라합 이야기의 구조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아래에 제시된 라합 이야기의 구조는 라합 이야기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A. 정탐군의 파송(1)

B. 정탐군을 보호하는 라합(2-7)

C. 라합의 신앙고백(8-14)

B’. 정탐군을 보호하는 라합(15-22)

A’. 정탐군의 귀환(23-24)

 

라합 이야기는 정탐군의 파송(A)으로 시작하여 정탐군의 귀환(A’)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라합 이야기의 중심은 정탐군의 사역보다는 정탐군에 대한 라합의 태도에 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의 정체를 알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안위와 신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B, B’).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의 눈을 속이며 정탐군을 보호하려는 라합의 이런 시도는 목숨을 건 위험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의 안전을 위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인가? 그 이유는 8-14(C)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라합의 이 모든 행위는 오직 이스라엘의 여호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 2장의 중심은 여호수아도 정탐군도 아니다. 오히려 수 2장은 부도덕한 여인으로 손가락질 받았던 한 여인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수 2장은 라합이라는 한 천박한 여인의 행위를 그토록 부각시키는 것인가? 더욱이 여호수아서의 저자는 왜 라합 이야기를 도입부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라합 이야기가 장차 가나안 땅에서 거하게 될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예고해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공동체로 규정될 수 있는가? 라합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 미리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과 다른 이방 민족일 지리도 여호와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기생과 같은 비천한 신분의 여인일지라도 과거의 잘못을 버리고 새로운 신앙의 삶을 선택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의 이스라엘은 이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향한 언약적 신앙을 버리고 기생 라합보다 못한 영적인 기생으로 전락한다.

 

목회적 적용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멀리하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비천한 그룹들을 멀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의 통치로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종이나 출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그 정신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이미 구약 시대에 예견되고 있다. 특히 라합 이야기는 장차 가나안 땅 공동체의 정체성과 그 방향성을 알려주며, 먼 훗날 메시아를 통해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미리 예고한다. 그러므로 라합 이야기를 설교하는 목회자들은 라합의 붉은 줄에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비천한 여인의 신앙고백이 전체 여호수아에서 어떻게 작용하며 기능하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하며,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어떻게 신약의 메시지와 연결되는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실로 라합 이야기의 핵심은 라합의 붉은 줄이 아니라 라합의 신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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