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2:12은 반지성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조회 수 38393 추천 수 0 2015.02.11 17:22:55

 

본문 난제 해설

 

12: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들어가는 말

 

아마도 전 12:12은 성경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조차도 널리 알려진 본문일 것이다. 필자가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어떤 박사과정 학생이 이 구절이 적혀 있는 쪽지를 그의 책상 앞에서 붙여놓은 것을 보고는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종종 사람들은 연구의 무의미를 노래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곤 한다. 특히 대입 수능고사 준비에 찌든 아이들에게 이 구절은 어쩌면 청량제(?)와도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구절은 공부의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몇 년 전 필자의 건강이 조금 나빠진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를 걱정하던 어떤 주변 사람들은 전 12:12을 인용하면서 글을 그만 쓰고 건강부터 챙기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조언의 핵심은 과로하지 말고 건강을 먼저 돌보라는 것이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의 조언을 뒷받침하는 본문으로서 전 12:12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는 전 12:12을 좀 더 깊이 살펴볼 때, 이 구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피상적인 의미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 12:12이 의도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전도서 전체의 맥락에서 본 전 12:12

 

먼저 전 12:12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도서 전체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한된 지면관계로 인해 여기서는 전도서의 구조를 통해서만 전도서의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전도서의 구조적 특징은 화자의 차이를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1:1, 7:27 12:9-14에서 3인칭으로 묘사되는 반면, 그 밖의 본문에서는 1인칭으로 표현된다. 또한 1:112:9-14의 전후에는 동일한 신학적 진술 즉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동일한 표현이 소개된다. 또한 이 신학적 진술 전후에는 서론적 시(1:4-11)와 결론적 시(11:9-12:7 혹은 12:1-7)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전도서 전체의 구조는 1:112:9-14, 1:212:8, 1:4-1111:9-12:7이 각각 교차 대구를 이루는 형식을 취한다.

 

A. 프롤로그(1:1)

     B. 신학적 모토(1:2)

         C. 서론적 시(1:4-11)

             D. 전도자의 말씀(1:12-11:8)

        C'. 결론적 시(11:9-12:7)

    B'. 신학적 모토(12:8)

A. 에필로그(12:9-14)

 

무엇보다도 이 구조는 전 12(특히 12:9-14)의 위치와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전도서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12:9-14는 전체 전도서의 에필로그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은 12:9-14이 전체 내용의 핵심적 사상과 결론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12:12의 의미

 

이 표현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세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오(C. L. Seow)나 화이브레이(R. N. Whybray)와 같은 학자들은 지혜자의 지혜 연구는 정당하며, 본 구절은 정경이 아닌 세속 학문과 문학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정경이 아닌 다른 세속 작품들에 대해 지나친 연구는 끝도 없으며 도리어 몸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문의 화자가 정경 이외의 본문 연구의 문제점을 염구에 두고 있었는지는 본문 상에서는 불분명하다.

 

둘째, 롱맨 3(Tremper Longman III)와 같은 학자들은 전 12:9-14의 화자가 전도자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그의 지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들에 의하면, 12:9-14의 화자는 청중들을 향해 전도자의 생각이 위험하며, 그에 따른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전도서에는 두 가지 다른 사상들이 충돌하고 있으며, 12:9-14은 전도사의 잘못을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전도자의 메시지와 전 12:9-14을 대립시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자는 앞서 구조에서 분석했듯이 전 12:9-14이 전체 전도서의 메시지를 종합하며 마지막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2:9-14의 독특한 구조적 특징과 중요성을 인식한 림버그(Limburg)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전의 어떤 학자들은 9-14절을 한 편집자가 부정적으로 기술한 내용이라고 보았 . 그들은 이 구절들이 전도자의 말들이 아니며, 그러기에 다소 가치가 떨어지며 알곡의 껍질처럼 내던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 서 볼 때, 이 책의 최종편집자의 마지막 구절들은 이전에 논의되었던 내용들의 요 약해주며, 책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도자와 전 12:9-14의 화자를 서로 대립시키는 입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끝으로 웹(Barry G. Webb)과 같은 학자는 이 구절의 표현을, 이스라엘의 지혜의 한계와 연결시킨다. 다시 말해, 아무리 연구를 해도, 모든 지혜는 한계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으며, 답변될 수 없는 난제들에 너무 집착하면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웹은 이 구절이 해결되지 않는 이슈들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조심해야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고 본다. 필자는 위의 세 가지 입장들 가운데 웹의 입장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비록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대표적인 해석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나타내지만, 12:12을 학문의 무의함과 연결시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 12:12을 사용하면서 학문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폄하하는 태도는 본문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자신의 학습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구절을 사용한다면, 그것 역시 본문의 의도를 왜곡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지나친 지성주의는 숭고한 종교적 감성과 체험에 때때로 방해가 될 수 있는 반면에 잘못된 반 지성주의적 태도는 정당한 연구의 중요성과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특별히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은 전 12:12을 염두에 두면서 본문에 대한 연구를 접어두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만 애를 쓰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 더욱 씨름하며 본문의 의도를 반영하는 적용적 메시지를 선포할 때, 설교자의 권위는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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