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인구조사,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회 수 47197 추천 수 0 2015.08.07 00:59:20

성경난제해설

 

삼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장세훈(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오래전 필자가 어느 목사님을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그 목사님은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며 열심히 가르치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 분은 자신의 절망적인 순간을 내게 말씀해 주셨다. 그 분은 어느 진보적인 목회자를 만나 성경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진보적인 목회자는 성경의 오류를 확신하며 그 실례로서 삼하 24:1과 대상 21:1에 등장하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언급했다고 한다. 언뜻 본문을 읽어보면, 삼하 24:1과 대상 21:1은 인구조사의 원인으로서 하나님과 사탄을 부각시키면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그 진보적인 목회자의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 목사님은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수년이 지난 후 필자는 이 목사님과의 만남과 그 대화를 기억하며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난제본문(삼하 24:1/대상 21:1)을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본 글은 삼하 24:1과 대상 21:1의 차이로 혼란을 겪는 목회자들의 성경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둘 것이다.

 

난제를 해결을 위한 시도

 

삼하 24:1은 인구조사의 배경을 하나님의 진노와 연결시키는 반면, 대상 21:1은 인구조사가 사탄의 정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언뜻 보기에 이 두 본문에 제시된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배경과 그 원인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각각의 본문에는 인구조사의 원인과 그 주체를 서로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더욱이 대상 21:1에 나타나는 사탄의 출현은 가장 주목해 볼만하다. 이런 차이점은 독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다 주며,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해왔다. 그 중 대표적인 입장은 상호 조화적 접근이다. 이런 입장은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접근방식으로서 인구조사의 원인을 하나님사탄으로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두 본문이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학자들은 이 두 본문의 조화를 위해 사탄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적 개념을 도입한다. 이들에 의하면, 삼하 24:1은 인구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는 반면, 대상 21:1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사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두 본문은 다윗을 유혹한 장본인은 사탄이었으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유혹을 허용한 것임을 나타내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두 본문은 서로 상충되는 논리를 보여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측면 즉 사탄의 유혹하나님의 허용하심이라는 두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삼하 24:1은 분명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진술한다. “감동시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수트는 대체로 자극하다혹은 충동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전반적인 용법은 적극적으로 자극시켜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암시하고 있다. 특히 이 단어는 심각한 파멸의 결과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의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그렇다면 삼하 24:1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적극성과 주도성을 암시해 준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적 개념은 본문의 의도와는 다소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비평학자들은 전통적인 조화적 접근의 문제점을 인식한 뒤,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역대기 저자의 독특한 신학적 관점과 그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이들은 역대기 저자가 기존의 삼하 24:1의 본문을 자신의 시각에 따라 혹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요청에 따라 이 본문을 수정하고 교정하였으며, 그로 인해 대상 21:1은 삼하 24:1에 대한 신학적 재기술로 이해한다. 브라운(Roddy Braun)과 같은 학자는 역대기 저자가 페르시아의 이원론을 경계하기 위해 삼하 24:1을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역대기 저자가 속해있었던 그 당시에 페르시아의 이원론이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대기 저자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악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본문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가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맥콘빌(J. G. McConville)과 같은 학자는 대상 21:1의 사탄의 등장은 악이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활동한다는 유대교의 이원론적 경향을 나타내 주는 특징이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역대기 저자는 사무엘서 저자보다는 사탄의 독자적인 역할을 보다 더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대상 21:1에 나오는 사탄이라는 단어가 욥 1-2장과 슥 3:1과는 달리 관사가 빠져있다는 점에 집중하면서 이 단어가 대상 21:1에서 고유명사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편집 비평적 입장은 숱한 해석만을 양산시킬 뿐 본문의 난제 해결을 위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다윗의 인구조사의 원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대상 21:1에 등장하는 사탄이라는 히브리어의 의미가 두 본문의 난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고 믿는다. 대체로 대상 21:1에 등장하는 사탄은 천상적 존재로 해석된다. 그러나 구약에서 사탄이라는 명사는 천상적 존재뿐만 아니라 지상의 존재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사탄의 동사형은 고소하다”, “비난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명사형은 대적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탄이 지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 그 단어는 다윗에게 적용된다. 삼상 29:4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있는 다윗이 결국 그들의 대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블레셋의 사탄으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 이 단어는 아비새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다윗은 시므이를 처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에게 나의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삼하 19:18-20). 세 번째 경우는 솔로몬의 시대와 관련이 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계획할 당시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진다. 왕상 5:4은 이 때를 대적이 없는 시대로 소개한다. 여기서 사탄은 군사적 대적들을 가리킨다. 솔로몬 왕국의 후기 때에 여호와는 솔로몬을 대항하는 두 대적을 일으킨다. 하나는 에돔의 하닷이며(왕상 11:14), 또 다른 대적은 아람의 르손이다(왕상 11:23, 25). 이처럼 사탄은 지상의 대적자들로서 이해된다. 반면에 천상적 존재로서의 사탄은 주로 욥 1-2장과 슥 3:1-2에 등장하며, 여기서 사탄은 천상을 배경으로 하는 존재로서 정관사를 수반한다(1-2/3:1-2). 흥미롭게도 대상 21:1에 등장하는 사탄은 정관사를 수반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상 21:1의 사탄을 천상적 존재보다는 지상적 존재로 해석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구약에서 사탄의 용법은 천상적 존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대적들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대상 21:1의 사탄을 지상적 존재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암시들이 역대기 상 본문에 나타나고 있다.

 

첫째, 대상 21장은 다윗 왕의 치적에 대한 기사(대상 14:3-22:1)에서 다윗 왕 통치 말기(대상 22:2-29:30)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주목해야할 점은 대상 21장의 근접 선행 단락인 대상 18-20장이 다윗의 군사적 정복 및 도전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기술되는 전투들은 대부분 이방 대적자들과 관련되어 있음은 주목해 볼만하다. 예를 들면, 이 단락에 나타난 다윗의 이방대적자들은 다음과 같다: 블레셋(대상 18:1); 모압(18:2); 소바 왕 하닷에셀(18:3-8); 에돔(18;12-13); 암몬과 아람(19:1-19); 암몬(20:1-3); 블레셋(20:4-8).

 

특히 대상 21:1에 나타나는 일어나 대적하고”(לע דםעיו)라는 표현은 대항하다혹은 반역하다는 뜻을 전달하며, 다분히 군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상 21장의 문맥은 이스라엘의 어떤 이방 대적자가 다윗을 향해 반역을 시도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 또한 대상 21:13에서 다윗은 자신이 대적의 손에 빠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것은 21:1의 사탄이 군사적 대적과 관련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세일헤머(John H. Sailhamer)가 지적하고 있듯이, 구약 역사서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이방의 군사적 대적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왕상 11:9-14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 - -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고 선언한다. 왕상 11:25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고 진술한다. 이처럼 사탄은 이스라엘의 왕에게 도전하는 이방의 군사적 대적을 가리킬 수도 있다. 종합해 보자면, 역대기 상의 본문 배경과 타 본문에 나타난 사탄의 용례를 고려해 볼 때, 대상 21:1의 사탄은 천상적 존재라기보다는 지상적 존재, 특히 다윗에게 도전하는 이방의 군사적 대적자로 이해할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대상 21:1의 사탄의 정체를 살펴보았다. 만약 대상 21:1의 사탄이 다윗을 대적했던 이방의 군사들이라면, 삼하 24:1과의 차이로 인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삼하 24:1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부각시키는 반면, 대상 21:1은 이 하나님의 진노의 구체적 방식을 나타내 준다. 다시 말해, 대상 21:1은 이방의 군사(사탄)을 일으키어 다윗을 궁지로 몰아넣으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본문에는 이 진노의 이유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대상 21장 전후의 맥락을 고려해 볼 때, 솔로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윗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잘못을 범하여 이방의 대적자의 공격에 직면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상 21장이 군사적 전투를 소개하는 선행단락과 연결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다윗은 이방 대적의 도전에 맞서 군사적 대응을 하고자 인구(병력) 조사를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다윗의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과연 무엇인가? 이방의 군사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다윗은 무엇을 가장 의지해야 하는가?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며 여호와를 신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자신의 군사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자신이 보유한 군사력이 대적의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대상 21:1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살펴보기보다는 먼저 눈에 보이는 군사력을 신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다윗의 잘못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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