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 저주(창 9:20-27)에 대한 오해와 진실

조회 수 40323 추천 수 0 2015.08.08 13:29:05

구약 난제 해설

 

함의 저주(9:20-27)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필자가 섬기는 신학대학원은 영어로 수업하는 외국인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창세기를 수업하던 도중 평소와는 달리 이들에게 조금 화를 내었다. 그 이유는 아프리카에서 유학을 온 한 학생이 창 9:20-27에 등장하는 함의 저주를 언급하면서 함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프리카인들의 피부가 검은 색이 된 것은 함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잘못된 성경이해를 질타하고 그들의 피부색과 함의 저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수업을 마친 후 그 학생은 내게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며 성경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함의 저주는 이보다 더욱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오용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의 낙후성을 함의 저주와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심지어 함의 저주는 노예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악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미국의 노예무역이 1600년대부터 시작될 때 함의 저주는 아프리카인들의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연 창 9:20-27에 언급된 노아의 아들 은 아프리카인들의 조상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로 함의 저주는 지금도 아프리카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창 9:20-27에 소개되는 함의 저주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본문에는 함의 행동으로 인해 함이 아닌,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저주의 원인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함의 저주의 원인과 그 의미

 

본문은 포도주에 취하여 맨 몸으로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노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벌거벗은 노아의 하체를 먼저 목격한 이는 함이었다. 그는 이 광경을 목격한 후 두 형제인 셈과 야벳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셈과 야벳은 이 소식을 접한 후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하여 노아에게 접근한 후 옷으로 노아의 하체를 가렸다. 술이 깬 노아는 자신의 아들들이 행한 일을 깨닫게 되고, 함을 향해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9:25)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왜 노아는 함을 향해 가나안의 저주를 선포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으나 여기서는 대표적인 두 입장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학자들은 함의 저주가 함의 그릇된 성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함이 그의 아비 노아의 하체를 보고 성적인 욕망을 품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약의 몇 몇 본문들은 하체를 보는 행위와 성적인 행위를 분리시키지 않는다(20:17). 둘째, 혹자는 벌거벗은 노아의 모습에 대한 노아의 아들들의 다른 반응과 태도 차이에 집중하면서 함의 문제를 해석한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고 뒷걸음질해서 그의 벗은 몸을 옷으로 덮었지만 함은 노아의 하체를 보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몇 몇 학자들은 이와 같은 형제들의 상반된 반응과 모습은 함의 부적절절한 처신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두 가지 해석 가운데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여긴다. 예를 들면 웬함(Gordon Wenham)은 우가릿 서사시(Ugaritic Epic)에 등장하는 Aqhat 1.32-33을 인용한다. 이 본문은 아비가 술을 마신 경우 그의 아들이 그 아비를 손으로 부축할 것과, 아비가 술에 만취될 경우 그의 아들이 그 아비를 직접 데리고 올 것을 언급한다. 그리하여 웬함은 술에 만취한 아비에 대한 아들로서의 올바른 태도와 처신을 보이지 못한 함의 문제를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함의 저주가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 선언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이들은 함이 그의 아비의 권위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그의 아들 가나안을 통해 동일한 문제를 경험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둘째, 몇 몇 학자들은 가나안에게 선포된 저주를 예기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장차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하여 복속될 것임을 예상하여 미리 선언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의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여긴다. 즉 가나안의 저주는 가나안이 그의 아비와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것이며, 그의 범죄로 인해 정복과 종살이를 경험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목회적 적용

 

이상으로 우리는 함의 저주와 관련된 창 9:20-27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중요한 해석학적 이슈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비록 해석의 견해와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함의 후손으로 여기며 함의 저주를 그들에게 적용시키는 해석은 본문의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축복과 저주는 혈통적 관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혈통적으로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종이든 누구이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거듭나지 못하면 비록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으며 심판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구약의 축복과 저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며 복음의 빚 아래서 해석되고 적용되어야만 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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