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의 완악함(출 4-14장) 누구의 탓인가?

조회 수 26717 추천 수 0 2016.09.11 20:43:09

바로의 완악함(4-14) 누구의 탓인가?

 

 

4-14장에 등장하는 바로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는 완고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어떤 본문들은 바로 왕 스스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고 묘사하는 반면, 몇 몇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고 진술한다. 바로의 완악함은 누구 때문인가? 바로 왕 자신의 의지의 결과인가 아니면 바로의 마음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의지 때문인가? 바로의 완악함의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들은 본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매우 혼돈을 안겨다 준다. 이 어려운 이슈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제시해 왔다.

 

고전적 해석

 

바로의 완악함의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에 대해 몇 몇 학자들은 서로 조화시키는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바로의 완악함은 바로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더욱이 바로의 마음이 점 점 더 완악해 지고 그 정도가 심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만든 것이다. 이 고전적 해석은 지금도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해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다른 견해들을 제시한다.

 

변증법적 해석

 

바로의 완악함을 묘사하는 본문들을 살펴본 어떤 이들은 바로의 완악함의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들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오히려 성경에는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불가능한 변증법적 진리들이 존재하며, 상이한 진술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의 변증법적 긴장을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변증법적 해석을 거부하고 다른 대안들을 모색한다.

 

고대근동적 해석

 

출애굽기를 연구해 온 최근의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했다는 표현이 매우 의도적이며, 이와 같은 의도에는 고대근동의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고대근동의 관점, 특히 이집트의 관점에서 볼 때, 바로 왕의 마음은 오직 이집트의 신에 의해서만 통제되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저자는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서 바로의 마음 자체를 애굽의 신이 아닌, 여호와가 통제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저자는 바로 왕의 마음을 친히 주관하고 다스리는 여호와의 전능하심과 권능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경고를 거부한 결과의 관점으로 보는 해석

 

치즘과 같은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은 바로가 여호와의 경고를 듣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여호와는 바로에게 6회에 걸쳐 경고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에 순응할 것을 역설하면서 재앙에서 면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 특히 아래의 도표를 보면, 여호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바로를 향해,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다.

 

여호와의 경고

바로의 거절

바로의 완악함

1. 5:1

1. 5:2

1. 7:8-24

2. 8:2-4

2. 8:5-7

2. 8:8-19

3. 8:20-23

3. 8:24

3. 8:25-32

4. 9:1-5

4. 9:6

4. 9:7-12

5. 9:13-21

5. 9:22-26

5. 9:27-35

6. 10:4-6

6. 10:7-11

6. 10:12-29

 

실제로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든다는 언급은 9:12에서 처음 언급된다. 4:217:3에 등장하는 표현은 여호와의 예언적 진술에 가깝기 때문에, 바로의 완악함은 바로 자신에 의해서 먼저 시작된다(예를 들면 7:13, 14, 22, 8:15, 19, 32, 9:7을 보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완악함의 변화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했다는 것은 바로의 변화의 가능성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위의 여러 견해 가운데 경고를 거부한 결과의 관점으로 바로의 완악함을 해석하는 입장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목회적 적용

 

4-14장에 등장하는 바로의 완악함은 하나님의 주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완악함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인간의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의 주권의 탓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는 사실은 결코 바로의 죄를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여호와의 경고를 거부한 바로의 완악함의 불가피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본문의 의도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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